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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기행]스페인 대표 와인산지, 리오하의 도전과 혁신
등록일
2013-10-18 오전 10:56:14
글쓴이
관리자
내용
리오하와인은 보통 15~20년, 심지어 40년 이상 숙성시켜 출하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다.

스페인을 유난히 사랑하고 와인애호가였던 노벨문학상 수상자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즐겨 마셨던 와인이 리오하 알타(Rioja Alta)다. 이 와인의 생산지인 리오하의 주도 로그로뇨에 도착한 날이 7월 한여름의 토요일이었는데, 도시는 온통 타파스(스페인 전통음식) 음식축제로 골목마다 인파가 넘쳐흘렀다.




리오하의 엘시에고에 있는 마르케스 데 리스칼 와이너리의 프랭크 O 게리가 설계한 ‘와인시티’의 현란한 모습. 와인셀러, 호텔, 온천, 레스토랑 등이 있다.


보르도가 프랑스의 와인을 대표한다면 리오하는 스페인 와인을 대표하는 와인 산지다. 마드리드에서 북쪽 336㎞에 위치, 피레네 산맥을 두고 프랑스 접경에 가까운 리오하 지방은 실제로 보르도의 양조기술을 도입해 한때 스페인의 최고급 와인 생산지로 명성을 떨쳤다. 로마 정복 이전부터 오랜 와인 역사를 가지고 있는 리오하는 1991년 스페인 최초로 품질등급(DOC)제도를 획득하였다.

리오하의 와인은 1년 동안 오크에서 숙성하는 ‘리오하’, 2년 이상 숙성 기간 중 1년 이상 오크통에서 숙성한 ‘크리안자’(Crianza), 3년 숙성 기간 중 최소 1년은 오크통에서 숙성한 ‘리오하 리제르바’(Rioja Reserva), 그리고 2년은 오크통, 다시 3년 이상 병에서 숙성한 최고급 ‘리오하 그랑 리제르바’(Rioja Gran Reserva) 등급으로 나뉜다. 스페인의 대표 품종인 템프라니요가 60% 이상을 차지하고, 그밖에 가르나차, 마수엘로, 그라치아노와 화이트 와인 품종으로 비우라, 말바시아, 그리고 카베르네 쇼비뇽과 같은 일부 국제 품종을 재배한다.

1년에 3억4000만병 이상을 생산하는 리오하는 크게 세 개의 와인 생산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구세계의 전형을 보여주는 리오하 알타(Rioja Alta), 바스크 지역으로 풀 보디와 높은 산도의 와인을 생산하는 알라베사(Alavesa), 그리고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산도가 떨어지고 알코올 도수가 높은 바하(Baja) 지역이다.

파코 가르시아 와이너리가 생산한 와인 레이블. 마치 현대미술작품과 같은 강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리오하 와인은 보통 15~20년, 심지어 40년 이상 숙성시켜 출하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다. 그러나 오크통에서의 오랜 숙성방식은 자칫하면 와인을 카라멜·커피나 견과류 향 대신 고무와 석유 냄새로 변질시킬 수 있고, 그만큼 생산비가 높다. 또한 척박한 토양에 따른 품질 저하와 전통에 지나치게 안주했던 오늘날의 리오하는 옛날의 영광을 아쉬워하고 있는 형편이다.

신세대가 선호하는 새 와인 개발
필자는 리오하 전통 와인의 기반 위에 현대인이 좋아하는 새로운 와인을 만들겠다는 파코 가르시아(Paco Garcia)와 메드라노 이라주(Medrano Irazu) 와이너리를 찾았다. 특히 로그로뇨 남동쪽 17㎞에 위치한 파코 가르시아 와이너리의 젊은 오너 후안 바우티스타 가르시아는 최근 유럽에서 와인 소비가 급감하고 있는 원인을 분석하고 소비자, 특히 신세대가 선호하는 새로운 와인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그의 꿈을 실현하고 있었다.

풀 보디에 섬세하고 우아하며 드라이하고 복합적인 풍미를 가진 전통적으로 좋은 와인을 구세대가 선호한다면, 신세대가 좋아하는 모던 와인은 과일향이 풍부하고 가볍지만 살아 있는 풍미와 그들의 시선을 잡을 수 있는 이미지가 있는 와인이라고 확신하였다.

신세대가 좋아하는 와인을 개발하고 있는 파코 가르시아의 젊은 오너 후안 바우티스타 가르시아.
그는 지금까지 규격화된 전통 양조방식을 탈피하고, 그 해의 작황과 품종, 그리고 테루아에 따라 매년 다른 방법으로 와인을 만들었다. 와인 레이블도 아버지와 자신의 핸드프린트를 사용하여 마치 현대미술작품 같은 이미지를 구현하였다. 또한 아버지가 만든 구세대 와인을 통해 전통과 혁신의 두 제품을 차별화시켰다. 그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 써 있는 ‘Nothing is wrong if it feels good’(느낌이 좋으면 문제될 게 없지)이라는 문구를 보니 혁신을 추구하고 있는 젊은 와인메이커의 끝없는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개발한 와인 중 6개월 동안 오크통에서 숙성한 ‘세이스’(Seis), 1년을 프랑스 오크통에서 숙성한 ‘P.G 크리안자’(P.G Crianza)를 시음한 후, 아버지의 와인이라고 할 수 있는 16개월 동안 프랑스 새 오크통에서 숙성한 ‘뷰티풀 싱스 크리안자’(Beautiful Things Crianza)를 시음하였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고전적인 아버지 와인에 더 매료되었지만 ‘세이스’나 ‘P.G 크리안자’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와인 맛이었다. 특히 루비색을 띤 ‘Seis’는 신선한 딸기와 제비꽃 향이 베이스가 되어 과일과 꽃의 풍미가 유감없이 발현되었다.

리오하 여행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두 곳이 있는데, 12세기에 건설된 알라베사에 있는 라구아르디아(Laguardia)와 2006년에 완성된 엘시에고에 있는 와인시티다. 라구아르디아는 작은 성곽마을로 네 곳의 출입구를 제외하고는 성벽으로 완벽하게 둘러싸여 있다. 이 마을이 다른 중세 도시와 구분되는 특징은 13세기의 모습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고, 도시 전체를 거미줄처럼 연결해주는 지하터널이 있다는 점이다. 이 지하터널은 당시 방어 목적으로 건설되었으나 지금은 와인셀러와 시음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와인셀라로 이용되는 13세기 지하 터널
필자는 언덕 위에 있는 고색창연한 성곽마을 라구아르디아의 변함없는 모습을 보면서, 잠시 10여년 전 산 세바스찬과 빌바오 방문길에 하룻밤 묵었을 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늦은 밤 마치 중세로의 시간여행을 하는 것처럼 희미한 가로등에 비치는 작은 식당, 와인 바와 예쁜 가게가 늘어서 있는 좁은 석조 길을 따라 거닐면서 느꼈던 감동!

리오하 와인의 혁신과 새로운 도전의 또 다른 모델은 1858년에 설립된 마르케스 데 리스칼(Marquis de Riscal) 와이너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적한 와인마을 엘시에고 근교에 감각적인 색깔의 지붕이 강렬한 태양에 반사되고 있는 건축물이 있다. 이 건물은 마르케스 데 리스칼이 2000년에 새로운 와인산업의 부흥을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의 하나로, 우여곡절 끝에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금세기 최고의 건축가 프랭크 O 게리(Frank O Gehry)가 설계한 와이너리다.

와인셀러, 호화 호텔, 와인 스파와 최고급 레스토랑으로 이루어진 와인시티는 와인 병의 개념을 건물에 도입하였다.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티타늄 판으로 건물 외관을 장식한 데 비해, 이 건물은 와인 색깔인 핑크색, 와인을 싸고 있는 그물망인 황금색, 와인 병 캡슐인 은빛을 형상화한 지붕을 덧씌워 그 현란함을 극대화하였다. 물론 와인시티 프로젝트에는 우아하면서도 누구나 마시기 쉬운 새로운 와인을 만든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에 와이너리 설계를 망설였던 게리가 와이너리 측이 1929년산의 게리와 출생연도가 같은 와인 한 병을 선물하자 이에 감동하여 수락했다는 일화는 지금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리오하 알라베사 지역의 포도원 전경. 멀리 보이는 산이 칸타브리아 산맥이다.

전통의 기반 위에 새로운 창조정신을 통해 리오하 와인의 옛 영광을 되찾겠다는 젊은 와인메이커들과 마르케스 데 리스칼 와이너리의 노력이 얼마나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와인은 분명 인류 역사와 함께 발전하였고 앞으로도 그 진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헤밍웨이가 리오하 와인을 즐겨 마시며 집필했던 소설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의 제목처럼.

글·사진|송점종<우리자산관리 대표, Wine MBA> j-j-s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