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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기행]스페인의 새 별 ‘리베라 델 두에로’
등록일
2013-10-18 오전 10:57:12
글쓴이
관리자
내용
이곳의 와인 역사는 수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부터였다.

리오하가 전통과 오랜 역사를 가진 스페인의 대표 와인 생산지라면,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는 최근에 새롭게 떠오르는 별과 같은 곳이다. 리베라 델 두에로를 세계의 와인 애호가들에게 각인시킨 것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베가 시실리아(Vega Sicilia), 핑구스(Pingus)와 같은 전설적인 와인들이었다.

마드리드에서 서쪽으로 140㎞ 내륙의 두에로 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완전한 대륙성 기후대다. 두에로 강은 포르투갈의 유명한 포트와인 산지인 오포르토항을 통해 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간다. 여름철 한낮 기온이 35도 이상까지 올라가지만 밤에는 12도까지 떨어진다.

높은 일교차 때문에 포도 완숙이 천천히 진행되어 당도가 높으면서도 풍부한 산도와 강건한 타닌을 함유하고 있는 포도를 생산할 수 있다. 또 해발 800m 이상의 고원지대로 여름에 강우량이 적고, 석회암·모래·점토·백악질 등 토양이 다양한 것도 리베라 델 두에로 특유의 강건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요인들이다.


아로칼 와이너리의 포도원 풍경. 이곳에서 수확한 틴토 피노 토착 품종으로 명품 와인 막시모를 생산한다.


이곳의 와인 역사는 수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였다. 원래 이곳은 대부분 사탕무와 일반 농작물을 재배한 평범한 농촌이었다. 그러나 이곳 토양이 와인에 이상적인 테루아임을 뒤늦게 깨닫게 된 토착 농민과 투자자들이 프랑스의 양조기술과 품종을 도입하고 새롭게 포도원을 조성하여 이곳 와인을 세계적인 명품 와인으로 탈바꿈시키는 기적을 일구어냈다.

이 기적의 중심에는 프랑스 품종에 눌려 거의 멸종위기까지 갔던 이 지역의 토착 품종인 틴토 피노(Tinto Fino·스페인의 대표 포도 품종 템프라니요의 변종)의 재발견이 있다.

독특한 이곳 테루아의 영향으로 지나치게 야성적인 포도 향을 가진 이 품종은 한때 싸구려 와인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새로운 재배법과 장기 숙성기술을 통해 명품 와인을 만드는 품종으로 다시 태어났다.

토착 품종 ‘틴토 피노’의 재발견
틴토 피노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는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베가 시실리아 와인이다. 스페인의 전설적인 와이너리가 된 베가 시실리아는 1864년 돈 엘로이 레칸다가 보르도에서 카베르네 소비뇽, 멜롯, 말백을 가져오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이 품종들을 틴토 피노와 함께 심어 최상의 품질의 와인을 만들었다. 그 후 와이너리를 인수한 루이 헤레로가 1915년 틴토 피노를 주품종으로 일부 프랑스 품종을 배합하고, 10년 이상 장기 숙성하여 지금의 전설적인 우니코(Unico) 와인을 만들었다.


아로칼 와이너리에서 시음한 와인들. 맨 오른쪽이 수령 70년 이상된 틴토 피노 품종으로 만든 톱브랜드 막시모다.

이 와인은 상업성을 배제한 장인정신이 만들어낸 하나의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 판매하지 않고 유럽의 상류층이나 친지들에게 우정의 선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이 와인은 1929년 바르셀로나 와인전시회에서 1917, 1918년 빈티지가 최고상을 수상했다. 1981년엔 영국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결혼식 때 만찬주로 사용되면서 최고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얼마 전 필자는 우니코 1973, 1986, 2002년산과 빈티지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 리제르바 에스페샬(최고 빈티지 3~4개를 배합하여 만든 와인)을 시음했다. 진한 벽돌색의 체리 빛과 헤이즐넛, 초콜릿, 바닐라 향에 균형 잡힌 적정한 산도와 알코올의 풍미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비단결 같은 타닌의 우아함과 지속성에 감탄했다.

필자는 리베로 델 두에로에 기적을 가져온 다양한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그 중 하나가 1996년 스위스의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설립한 아바디아 레투에르타(Abadia Retuerta) 와이너리다.

12세기에 건설된 수도원과 함께 700ha에 달하는 광활한 포도원을 매입하여 유럽에서 가장 현대적인 와이너리로 재건하였다. 특히 대형 와인 발효탱크로 포도즙을 운반하는 시스템은 마치 조선소의 시설처럼 방문객들을 압도하였다. 자연적인 온도 조절에 맡긴 지하 저장 셀라는 중세 수도원에서 이용해왔던 전통적인 숙성방법을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세 수도원 숙성방법, 지하 저장 셀라
대규모의 투자를 통한 대형 와이너리 못지않게 이곳에는 리베라를 빛내고 있는 소규모의 가족 중심 와이너리도 많다. 아란다 데 두에로 북쪽 해발 830m에 위치한 구미엘 데 메르카도 마을에 있는 아로칼(Arrocal) 와이너리는 33ha의 소규모 포도원으로,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3대가 함께 가장 전형적인 명품 리베라 와인을 생산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포도 재배에만 전념하다 1999년부터 양조를 시작한 아로칼 와이너리는 6종류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스위스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운영하고 있는 아바디아 레투에르타 와이너리의 대형 발효 탱크 시설이 마치 조선소 시설 같다.

흥미로운 것은 할아버지가 심은 포도로 만든 최고급 와인인 막시모(Maximo)와 안헬(Angel), 그리고 아버지가 심은 포도로 만든 아로칼 셀렉시온 레드와인이다. 톱 브랜드인 막시모 2005년산은 100% 틴토 피노로 70년 이상 된 포도나무에서 수작업으로 수확하여 1년에 2000병만 생산하는 귀한 와인이다.

12개월 동안 프랑스 오크에 숙성한 후 새로운 오크통에 옮겨 다시 14개월 동안 숙성시키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곳의 테루아를 닮아, 블랙체리 빛깔에 스파이시하고 스모키한 향과 풍부한 과일 향이 일품이다. 또 농축된 풀보디임에도 신선함과 적절한 산도, 벨벳 같은 부드러운 풍미가 살아 있었다.


리베라 델 두에로의 전형적인 명품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아로칼 와이너리의 장남 호드리고 칼보 아로요.

시음을 마치고 와이너리를 안내해준 오너의 장남인 호드리고 칼보 아로요에게 왜 아직도 결혼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와인을 만드는 일은 전형적인 농부의 일인데 누가 농부한테 시집오려고 하겠느냐”며 웃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와 천둥소리를 들으며 작별인사를 하였는데, 필자가 떠난 후 아마도 그들은 그날 우박을 걱정했을 것이다.

필자가 방문했던 여러 와이너리 중 테루아와 포도나무가 주는 교훈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곳이 10대에 걸쳐 운영하고 있는 디아즈 바요 와이너리이다. 작렬하는 태양, 풀 한 포기 살 수 없는 버려진 땅, 백악(Chalk)질의 자갈 위에서도 건강하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포도나무를 보는 순간 누구나 ‘이렇게 척박한 토양에서 어떻게 포도나무가 자랄 수 있으며 그 포도로 질 좋은 와인이 탄생할 수 있을까?’라고 궁금해 할 것이다.

필자는 언제부턴가 그 이유를 ‘다음 세대를 위한 자기희생’이라는 우리의 인생에 비유하곤 하였다. 척박한 토양에서 자란 포도나무는 영양분을 찾아 더욱 더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린다. 가까스로 흡수한 미량의 수분과 무기질을 오로지 다음 세대를 창조할 열매에 보낸다. 자신은 무성한 잎과 많은 가지를 만들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치면서. 그래서 양질의 와인은 앙상한 포도나무 가지에서 나오고, 세계적인 와인 산지는 대부분 사막성 기후대에 있는지도 모른다.

글·사진|송점종<우리자산관리 대표, Wine MBA> j-j-s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