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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기행]키안티 와인 키안티 클라시코로 부활하다 <2013 02/05ㅣ주간경향 1012호>
등록일
2014-02-25 오전 9: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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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키안티 와인은 피렌체와 시에나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지역에서 재배한 산지오베제를 주품종으로 하여 생산되는 와인을 말한다.

피렌체는 꽃의 도시, 르네상스 등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때 피렌체와 자웅을 겨루었던 시에나는 다소 생소한 도시다. 몬탈치노에서 북쪽으로 1시간 정도 달려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 와인의 중심도시 시에나에 도착했다. 시에나는 일찍이 로마 제국시대에 골 지방(프랑스)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12세기 이후 자치도시로서 상업·수공업과 금융업이 발달하였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영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문화와 예술의 도시이며, 1472년에 설립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Monte dei Paschidi Siena)이 현존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피렌체와는 끝없는 주도권 싸움을 벌였다. 1260년 몬타페르티 전투에서 승리하여 그 후 200년 동안 르네상스의 문화예술운동과 함께 화려한 융성기를 맞이했다.

보르고 스코페노 와이너리의 비나 미스치노 포도원 전경.


도시 전체가 중세 건축물 문화단지
그러나 1348년 페스트로 인구의 태반을 잃고 1555년에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에 종속되어 그 화려한 역사를 마감한다. 로마네스크식 양식과 사실주의에 중점을 둔 피렌체 미술에 반해 헬레니즘·비잔틴 문화의 신비로움에 근거한 시에나파를 탄생시킨 것은 미술사에서 중요한 사건이다.

시에나는 도시 전체가 완벽한 중세 건축물의 문화단지다. 그 중 필자에게 가장 인상적인 곳은 캄포 광장과 두오모 성당이다. 그리고 저녁 늦게까지 문을 연 카몰리아 골목 레스토랑에서 먹은 전통음식이 인상적이었다. 9개의 부채꼴 모양의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캄포 광장은 이 도시가 가장 번성했던 13~14세기를 통치했던 9인 정부를 상징한다. 매년 7월과 8월에 열리는 팔리오 축제와 함께 이탈리아 전체에서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광장이다.

많은 이들이 아직도 이탈리아 와인 하면 짚으로 포장되어 있는 키안티 로피노 와인을 생각한다. 명품 와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와 볼게리 지방의 수퍼토스카니 와인이 탄생하기 전까지 키안티 와인은 토스카나뿐만 아니라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이었다. 키안티 와인은 피렌체와 시에나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지역에서 재배한 산지오베제를 주품종으로 하여 생산되는 와인을 말한다. 그러나 산지오베제 품종에 30%까지 다른 포도를 배합할 수 있는 규정 때문에 부드럽고 마시기 좋은 와인에서 점점 저질 와인으로 전락하였다.

시에나 카몰리아 골목에 있는 유명한 전통음식점에 진열돼 있는 프로슈토와 살라미.


키안티 클라시코는 키안티보다는 한 단계 위의 고급 와인인데 주로 피렌체와 시에나 사이의 한정된 지역에서 생산되는 산지오베제를 사용한다.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는 키안티 클라시코를 더 오래 숙성시켜 양조한 강건하고 구조감 있는 와인이다. 명품 와인 바롤로와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의 탄생에 기여한 가문이 가야와 산티 가문이라면, 키안티 클라시코의 탄생은 전적으로 리카솔리 가문의 공헌이다.

900년의 역사, 리카솔리 가문
1141년에 설립된 리카솔리 가문의 역사는 32대, 900년이라는 오랜 역사와 함께 토스카나 지역에서 가장 방대한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다. 19세기 브롤리오 지역의 영주였던 베티노 리카솔리가 엄격한 키안티 와인의 제조방식을 제안하여 키안티 클라시코를 탄생시켰다. 키안티 와인이 생산 후 2~3년 안에 마실 수 있는 가벼운 대중적 와인이라면, 클라시코나 리제르바는 10년 이상 숙성하여도 그 힘을 유지하는 고급 와인이다. 베티노 리카솔리는 와인산업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하였는데, 높은 도덕심과 청렴성으로 이탈리아 최초로 총리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그는 총리직에서 사임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포도 재배와 와인 연구에 몰두하였다. 특히 바쁜 농부들을 위해 짧은 시간에 조리하기 쉬운 요리법을 개발하여 지금까지도 리카솔리 스타일의 야채수프와 로스트 비프 요리가 전해 내려온다. 철의 영주였지만 와인과 대중을 사랑하는 그의 정신이 몰락 직전의 키안티 와인을 키안티 클라시코라는 이름으로 부활시키며 토스카나 와인산업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가져오게 하지 않았을까?

필자는 키안티 클라시코를 직접 시음하기 위해 시에나 근교 카스텔누보 베르덴가에 있는 비교적 신생 와이너리 보르고 스코페토를 방문했다. 고풍스러운 농가, 올리브와 포도밭, 사이프러스 숲이 여전히 아름다운 토스카나의 자연 풍광이지만, 아직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모습이 더욱 평화롭게 느껴졌다.

니콜라 피사노의 걸작 시에나의 두모 성당. 화려한 외부의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보다 내부의 대리석 상감무늬가 더욱 현란하다.


11세기 교회 요새에서 14세기 소치니 가문의 별장으로 유서 깊은 이곳은 오래 전부터 와인과 올리브 농장으로 번성했다.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한 해는 1990년이었다. 이회질 점토와 석회암의 토양, 남쪽 방향으로 뻗은 완만한 경사지, 해발 350~420m에 위치한 와이너리는 70㏊의 포도밭에서 주로 산지오베제를 재배했다. 셀라 구경을 마치고 준비된 세 종류의 와인을 시음하였다. 이 중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비냐 미스치아노(Vigna Misciano)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산지오베제 100%로 만든 와인이다. 16세기 황폐화했던 미스치노 지역을 재건한 곳에서 생산한 것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웅장한 중세의 탑
30hl(헥토리터)의 대형 슬로바니아산 오크통과 500ℓ의 프랑스산 오크통에서 18~24개월을 숙성하고 병에서 다시 8개월 이상을 숙성하여 출하한다. 깊은 루비 색깔에 우아한 견과류와 스파이시한 향에 바닐라·코코아의 풍미, 강한 구조감에도 부드러운 타닌과 산미가 입안에 오랫동안 맴돌았다. 로스트 비프나 숙성된 치즈와 페어링하면 좋을 것 같았다. 아직 한국에는 수출하지 않고 있지만, “봄에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마케팅 담당 마리오 투리비가 말했다.

토스카나 지방에서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의 타워가 있는 산 지미냐노를 향했다. 토스카나를 여행하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시에나에서 곧장 피렌체를 향한다. 그러나 시에나와 피렌체의 서쪽 중간에 있는 산 지미냐노는 와인뿐만 아니라 하늘을 찌를 듯한 14개의 웅장한 중세의 탑이 있는 마을로 유명하다. 중세에 북부 유럽과 통하는 지정학적 요충지로 인해 부를 누렸던 귀족들이 방어와 부의 상징으로 경쟁적으로 탑을 건설하여 당시에는 70개가 넘었다고 한다. 

보르고 스코페토 와이너리의 와인셀라. 숙성에 대형 오크통을 사용한다.


페스트로 인해 마을은 폐허가 되었지만 그만큼 중세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잘 간직하고 있다. 세월에 깎인 돌로 깔려 있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오밀조밀한 가게들과 와인 숍들을 둘러보며 시간가는 줄 몰랐다. 관광의 중심지인 두오모 광장에 도착하니 석양에 높은 탑의 그림자가 더욱 길게 느껴졌다. 산 지미냐노 와인 역시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다. 이곳의 토양이 화이트와인 품종인 베르나챠에 적합하여 토스카나에서는 드물게 최고급 ‘베르나챠 디 산 지미냐뇨’라는 화이트 와인을 생산한다. 마을 언덕 위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저물어가는 토스카나의 자연을 감상하면서 베르나챠를 주문하였다. 연한 담황색에 사과·아몬드와 미네랄 향, 산미가 풍부한 드라이 타입으로 식전 주에 적합하였다. 생선과 파스타와 궁합이 좋았는데 르네상스 시대 이 와인을 즐겨 마셨다는 미켈란젤로와 메디치 가문의 예술가들을 생각하니 또 다시 중세로 시간여행을 한다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글·사진|송점종<우리자산관리 대표, Wine MBA> j-j-s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