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이탈리아 정통와인의 이단아라 할 수 있는 사시카이아의 역사적인 첫 번째 빈티지가 탄생했다.
로마제국의 유럽 정복을 위해 기원전 3세기에 건설되었던 군사도로인 아우렐리아 가도는 유난히도 무성한 소나무와 키다리 사이프러스가 어우러져 특별한 아름다움을 연출해내는 낭만적인 도로다. 서쪽 해안을 따라 시칠리아까지 남북으로 뻗어 있는 이 도로는 로마에서 제노아를 거쳐 프로방스나 알프스를 넘어 스위스로 연결된다. 시저의 군단들이 기원전 이 도로를 따라 라인강까지 진격, 세계 최초로 건설한 목재다리를 건너 게르만족을 격퇴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새삼 가슴이 두근거렸다.
산귀도 와이너리에서 시음한 와인들. 오른쪽 두 번째가 최초의 수퍼토스칸인 전설적인 사시카이아 와인이다.
아우렐리아 가도에서 내륙 쪽으로 꺾어들면 하늘을 찌를 듯한 사이프러스 가로수가 터널을 이루는 곳으로 유명한 볼게리로 가는 길이 나온다. ‘산귀도 교회 앞에서’(Davanti San Guido)라는 시에서 이 길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이탈리아의 국민시인 카르두치(19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유년시절을 보내며 시심을 키웠던 곳이다. 바로 이곳이 전설적인 수퍼 토스칸 와인의 효시이자 고향인 산귀도(Tenuta San Guido) 와이너리다.
세계의 와인 애호가들이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사시카이아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다. 산귀도 와이너리의 오너인 마리오 인치사 델라 로케타 후작은 수퍼 토스칸의 위대한 개척자다. 그가 1954년부터 3년 동안 전 유럽에서 16전 전승을 거둔 금세기 불멸의 경주 명마인 리봇(Ribot)의 주인이었다는 사실은 와인 애호가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리봇을 만든 후작의 경험이 훗날 리봇과 같이 금세기 최고의 전설적인 와인을 만드는 데 일조하게 되었다는 것은 와인사에 특이한 일로 기록될 것이다. 메독 스타일의 명품 와인을 만들겠다는 꿈은 경주마에 대한 열정과 환경보호에 대한 헌신이 일치돼 이루어졌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1950년에 리봇의 오너가 되었고, 지금도 볼게리에서 유명한 도르멜로 올지아타 브리드라는 경주마 사육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WWF(세계자연보호 광고단체) 초대 총장으로서 자신의 볼게리 농장 해안가 습지를 볼게리의 오아시스로 지정하여 보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연에 대한 그의 애정을 증명하고 있다.
이탈리아 정통와인의 이단아 후작은 1930년 볼게리 지역의 명문가 게라데스카 가문의 딸 클라리체와 결혼하여 광활한 이곳 땅의 반을 상속받았다. 1932년에는 피렌체의 와인 명문가 안티노리 가문의 니콜로가 클라리체의 동생 카를로타와 결혼하여 역시 이곳 나머지 땅(지금의 구아도 알 타소 와이너리)을 지참금으로 상속받았다. 1920년대 청년시절부터 귀족의 후예로 상류사회모임에서 자주 접했던 보르도 고급 와인의 맛과 향에 매료되었던 후작은 자신도 이 같은 와인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 경주마 리봇처럼 순수혈통의 최고 명품 와인인 보르도 와인을 벤치마킹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1930년대부터 그의 고향 북부 피아몬테 로케타에서 피노누아를 재배하고, 프랑스 오크통에 숙성하는 등 본격적인 실험을 시작하였다. 1940년대 부인과 함께 볼게리 산귀도에 정착한 그는 동서 니콜로 안티노리와 함께 방치된 이곳을 본격적으로 포도밭으로 개발하였다. 후작은 기후가 서늘한 이탈리아 북부와 달리 무덥지만 해풍으로 온난한 날씨와 유난히 자갈이 많은 이곳이 프랑스 메독의 글라브(자갈) 지역과 유사한 테루아(토양)를 가졌다고 확신하게 된다. 후에 이곳에서 생산된 와인의 이름을 사시카이아(자갈밭)로 명명하게 된다.
와인숍과 레스토랑이 있는 산귀도 와이너리. 왼쪽에 사시카이아의 레이블로 사용한 로케타 가문의 문장이 보인다.
후작은 이곳 토양에 맞는 포도품종의 시험재배를 거쳐 1944년부터 본격적으로 보르도에서 가져온 카베르네 쇼비뇽과 프랑을 심었다. 양보다는 품질을 위해 포도나무 식재도 간격을 띄우고 포도송이 숫자도 줄였다. 양조 방법도 전통적인 방식을 버리고 현대적인 장비와 기술을 도입하여 작은 프랑스산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는 등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혁신적인 방법을 택했다. 이렇게 하여 1964년 이탈리아 정통 와인의 이단아라 할 수 있는 사시카이아의 역사적인 첫 번째 빈티지가 탄생했다.
그러나 첫 번째 와인의 시음 결과는 지인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카베르네 쇼비뇽은 오랜 숙성과 기다림이 필요한 품종이었다. 후작은 매년 생산한 각 빈티지의 와인들을 계속 숙성시켜 동서인 니콜로 안티노리 등 지인들과 그 맛을 비교하고 양조 방법을 개선하였다. 오랜 진통과 기다림 끝에 1968년 사시카이아는 최초로 1967년 빈티지를 시장에 선보였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보르도의 최고등급 와인에 비견되는 품질과 가격으로 해외 와인 애호가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1978년 런던에서 있었던 카베르네 와인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보르도 와인을 누르고 1등을 하였으며, 1985년 빈티지는 미국의 와인 품평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100점 만점을 받았다. 법규대로 만든 와인이 아니라고 DOC(고급와인) 등급을 인정하지 않던 이탈리아 정부도 1994년 대부분의 수퍼 토스칸 와인에 DOC 볼게리 등급을 부여하였다. 특히 사시카이아 와이너리는 이탈리아에서 유일하게 지역이 아닌 와이너리 단독으로 DOC 등급을 받은 영광을 차지하였으며, 그 사례는 아직도 깨어지지 않고 있다.
와이너리 단독으로 유일한 DOC등급 구름 한 점 없는 볼게리의 하늘과 따사로운 태양을 맞으며 수퍼 토스칸이 탄생한 역사의 현장에서 사이프러스 길 건너편에 새롭게 단장한 양조장으로 이동하였다. 기다리고 있던 홍보담당 엘레나 부라키니 여사가 안내한 셀라는 다른 양조장과는 차이가 있었다. 층층으로 저장된 225리터의 프랑스산 오크통이 여과작업을 할 때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사시카이아는 77ha 면적에서 재배한 카베르네 쇼비뇽 85%와 프랑 15%를 배합하여 만든다. 스테인리스 통에서 15일간의 발효기간을 거친 후 프랑스산 오크통에서 2년간 숙성하고, 1개월간의 배합기간과 병입 후 3개월의 병 숙성을 거쳐 시판한다.
와인 여과작업을 하기 위해 쉽게 오크통을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된 사시카이아의 현대적인 와인셀라.
시음한 와인은 사시카이아 2009년산 이외에 세컨드 와인이라고 할 수 있는 기달베르토(Guidalberto) 2010(카베르네 60%, 멜롯 40%), 서드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레 디페제(Le Difese) 2010(카베르네 70%, 산지오베제 30%), 그리고 사르디나섬에서 생산된 바루아(Barrua) 2009(카리냥 85%, 15% 멜롯+카베르네) 등 네 종류였다. 기달베르토와 레 디페제는 오랜 숙성기간이 필요한 사시카이아 대신 합리적인 가격으로 가볍게 마실 수 있게 개발한 와인이다. 2009년산 사시카이아는 진한 루비 색깔에 잘 익은 과일향과 스파이시한 향, 아직 강하지만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는 탄닌, 적절한 산도의 균형잡힌 풍미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10년 이상을 보관할 수 있지만 지금 마셔도 강렬한 사시카이아의 또 다른 개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수퍼 토스칸 와인들만이 갖는 장점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명품 와인은 결코 우연히 탄생된 것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경주 명마 리봇을 육성한 철학으로 세계 최고의 와인을 만들겠다는 열정, 새로운 개혁과 끝없는 도전정신, 오랜 준비와 시행착오, 기다림의 미학을 통해 사시카이아는 탄생되었고, 그것을 몸소 실천한 마리오 후작의 이름은 수퍼 토스칸과 함께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