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샴페인의 특징은 조합원이 직접 재배한 최고등급의 100% 그랑크뤼 포도로 생산한 모노-그랑크뤼 샴페인이라는 점이다.
LVMH! 여성들이 열광하는 명품 가방 루이비통이 샴페인 모엣샹동이나 코냑 헤네시와 같은 그룹 회사라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LVMH(Louis Vuitton, Moet & Chandon, Hennessy의 머릿글자)그룹의 2013년 한 해 주류 분야만의 매출이 약 6조원에 달하고 순이익이 2조원 정도인 것을 보면 유럽에서 와인 산업이 차지하고 있는 경제적 비중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필자는 그동안 여러 차례 방문한 바 있는 샴페인의 대명사 돔 페리뇽으로 유명한 모엣샹동사에 들렀다. 에페르네의 샴페인가 중심에 있는 모엣샹동 본사는 변함없이 서 있는 돔 페리뇽 동상과 함께 여전히 관광객으로 붐볐다. 모엣샹동이 자랑하는 길이가 무려 27㎞인 지하 와인셀러는 사전에 예약을 하면 유료로 방문할 수 있다.
때마침 앤디 워홀을 잇는 미국의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 제프 쿤스가 레이블을 제작한 2004년산 돔 페리뇽 샴페인과 함께 각종 제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샴페인 명가는 수입상이나 저널리스트를 제외하고는 그들의 셀러를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며 여전히 귀족적 마케팅 전략을 중시하고 있다. 그러나 모엣샹동은 샴페인의 귀족적 이미지를 잃지 않으면서도 샴페인의 대중화 마케팅 전략을 통해 상업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마이 샴페인 하우스의 모노-그랑크뤼 포도원. 멀리 마이 샴페인 마을이 보인다.
쿠페잔 탄생의 재미있는 일화
시장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변화와 개혁은 와인 산업에도 예외가 아니다. 제프 쿤스의 전시 작품과 함께 입구 로비와 판매장에 있는 수많은 샴페인 잔을 이용한 설치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오늘날 와인 잔(wine glass)은 와인 문화의 중요한 에티켓 중 하나가 되었다. 현재 일반화돼 있는 와인 잔은 유리가 발명된 선사시대보다 훨씬 후인 17세기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현재의 와인 잔은 몸통(bowl), 줄기(stem), 밑받침(foot or base)으로 정형화되었는데, 와인의 종류나 스타일에 따라 각기 외형을 달리한다. 비록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지만 와인 잔의 모양에 따라 와인의 향기나 맛을 좀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시음을 통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의 대표적인 전통주인 백세주를 투박한 도자기 잔 대신 화이트 와인 잔에 마셨을 경우 은은한 황금 빛깔과 함께 저온 숙성한 쌀과 누룩의 향을 좀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다.
필자는 막걸리나 소주를 제외하고 모든 한국 전통주는 화이트 와인 잔으로 즐긴다. 샴페인 잔은 몸체의 입구(rim)가 좁고 줄기가 긴 플룻(Flute)형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결혼식이나 축제, 살롱에서는 입구가 넓고 둥그스름한 쿠페(Coupe) 잔을 선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마치 여성의 유방처럼 볼륨감 있고 아름다운 쿠페 잔의 탄생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절세미인 헬레네부터 루이16세의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 나폴레옹의 첫 번째 부인 조세핀, 루이15세의 정부 퐁파두르 후작까지 그녀들의 아름다운 가슴을 본떠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663년 영국에서 디자인되었다는 문헌상의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쿠페 잔이 여성의 유방처럼 아름답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로 보는 게 옳은 것 같다. 쿠페 잔은 1930년대부터 하나의 패션으로 각광받는다. 기포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데는 쿠페 잔보다는 플룻 잔이 더 적합하겠지만, 어떤 잔이든 끝없이 피어오르는 하얀 거품과 황금색 샴페인의 귀족적인 풍류를 즐기는 데는 분명 이 아름다운 샴페인 잔이 한몫 하지 않았을까?
모엣샹동 본사의 천장에 샴페인 잔으로 장식되어 있는 샹들리에 작품.
샴페인 생산량 10% 협동조합이 담당
아침 일찍 샴페인 루트를 따라 사진촬영을 마치고, 협동조합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최고의 그랑크뤼 샴페인을 생산하고 있는 마이(Mailly) 샴페인 하우스를 찾았다. 샴페인은 전통적으로 기업화된 메종이나 가족 중심의 전통을 이어온 명가, 그리고 작은 규모의 일부 포도 재배자들에 의해서 생산되었다. 그러나 샹파뉴의 침체기인 20세기 초, 포도 재배 마을을 중심으로 설립된 새로운 협동조합이 지금은 총 샴페인 생산량의 10% 정도를 생산하고 있다. 마이는 1920년에 그랑크뤼 등급을 획득한 랭스의 산 북쪽 경사지에 위치한 마이 마을에서 70ha를 소유하고 있는 75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된 협동조합 형태의 샴페인 메이커다. 남쪽의 마른 계곡에 비해 수확 시기가 늦은 관계로 필자가 방문할 때는 수확이 한창이었다.
와이너리에 도착하니 총괄이사인 장 프랑소와 프레오가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필자가 그동안 방문했던 화려한 샴페인 명가와는 달리 순박한 우리의 농촌 풍경과 같다는 것이 첫인상이었다. 와이너리에 안내되어 일련의 양조과정을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막 도착한 포도송이에서는 달팽이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하 19m에 위치한 1㎞ 길이의 셀러였는데, 조합 설립 초기에 30년 동안 조합원들이 겨울철에만 일일이 손으로 굴착하여 완성하였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르뮈아주 작업(병을 회전시켜 찌꺼기가 병목 쪽으로 모이게 하는 작업)을 자동화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1년에 약 50만병의 샴페인을 생산하고 있었다.
마이 샴페인 하우스의 샤르도네 포도에 있는 달팽이의 모습에서 자연의 순수함을 느낄 수 있다.
마이 샴페인의 특징은 독특한 테루아를 갖춘 포도밭에서 조합원이 직접 재배한 최고 등급의 100% 그랑크뤼 포도로 생산한 모노(단일지역)-그랑크뤼 샴페인이라는 점이다. 바쁜 수확기여서 프레오 이사의 제안으로 농부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하였는데 필자에게는 참으로 좋은 경험이었다. 야채 샐러드, 치즈에 빵과 스테이크가 나왔는데 반주는 역시 샴페인이었다. 요리사는 농번기나 행사가 있을 때만 인근 식당에서 임시로 고용한다고 하는데 비록 투박하고 심플하였지만 시골 밥상같이 맛깔스러운 점심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포도원을 전망할 수 있는 2층에서 마이가 생산한 총 9종류의 샴페인을 시음하였는데 필자에게도 이렇게 많은 종류의 샴페인을 한꺼번에 음미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30년 동안 손으로 굴착하여 완성한 마이 샴페인 하우스의 1㎞ 길이의 지하셀러.
전체적인 마이 샴페인의 공통점은 힘, 남성다움과 신선함에 있었다. 마이의 대표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브륏 리저브’는 100% 그랑크뤼 포도인 피노누아(75%)와 샤르도네(25%)를 배합해 10년 이상 숙성한 퀴베로, 노란빛을 띤 황금색, 풍부한 과일향과 뒷맛이 깨끗한 매혹적인 샴페인이었다. 마이의 톱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레에샹송(Les Echansons) 2004’는 작황이 좋은 해에만 생산한 한정품으로 병마다 고유의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현란한 황금빛, 반짝이는 호박색, 관능적이고 화려하게 피어오른 기포의 아름다움, 잘 익은 과일향과 유자향(레몬)이 느껴지는 순수한 미네랄리티, 아몬드, 벌꿀맛에 모노폴 그랑크뤼 테루아를 반영한 충만함과 신선함의 균형감이 입안에 오랫동안 지속되는 풍미가 일품이었다. 샴페인의 빛깔처럼 순수한 마이를 떠날 때 장 프랑소와 프레오 이사는 필자가 특별히 좋아한 ‘레에샹송 2004’ 한 병을 선물하였는데 그 샴페인은 아직도 필자의 셀러에서 더 좋은 날을 기다리며 잠자고 있다.
<글·사진 송점종 우리자산관리 대표·Wine MBA j-j-s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