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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기행]프랑스 남부 ‘론 와인의 패러독스’ <2014.05.27ㅣ주간경향 1077호>
등록일
2014-06-18 오후 3:5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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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이 지역의 서늘한 기후와 토양은 이곳이 론 지방이지만 메를로나 카베르네 프랑의 재배에 적합하여, 일반적인 론 와인과는 다른 특별한 와인을 탄생시켰다.

론 계곡의 와인산지는 크게 남북으로 나뉘지만 각 산지는 테루아의 특징에 따라 다시 여러 지역으로 구분된다. 론 지방의 원산지명칭제도(AOC)는 보르도나 버건디 지역처럼 복잡한 품질제도가 아니고, 포괄적인 4개의 품계로 단순화되어 있다. 즉, 론 전체 지역 생산 와인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코트 뒤 론, 상위등급인 90개의 코트 뒤 론 빌라주와 코트 뒤 론 빌라주에 마을 이름(코뮌)을 덧붙이는 18개의 AOC, 그리고 최고등급이라고 할 수 있는 17개의 크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코트 뒤 론 AOC는 일반적으로 이 지역을 대표하는 평범한 와인이지만, 일부 소량 생산하는 와인메이커에 따라 최고품질의 명품급 와인을 발견할 수도 있다. 포도품종은 레드 와인의 경우 시라와 그르나슈, 무르베드르, 카리냥과 생소, 화이트 와인인 경우 그르나슈 블랑, 위니블랑, 클레레트, 베르멍티노, 부르블랭 등 코트 뒤 론 AOC의 경우 무려 23개의 다양한 품종의 조합을 허용하고 있다. 양조과정에서 조합은 각기 다른 포도품종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이용하여 복합적인 풍미와 균형 있는 구조감을 발현시키는 데 있다. 그래서 흔히들 론 와인을 배합의 예술품이라고 말한다. 마치 화가가 다양한 물감을 배합해서 자신만의 가장 아름답고 개성 있는 색깔을 창조해내듯이.


 

생트 마리 드 라메르의 성당지붕에서 바라본 전형적인 남프랑스지중해연안의 풍경. 반 고흐가 해변의 작은 배를 그렸던 항구다.

전통적 론 와인과 배합한 비등급 와인
남부 론 지방을 대표하는 와인산지는 단연 지난 호에 소개했던 샤토네프 뒤 파프와 지공다스이다. 그러나 이밖에도 로제와인으로 유명한 타벨, 천연감미 포도주로 유명한 뮈스카 봄 드 브니즈, 옛날에는 랑그독 와인산지에 속했던 론 강 삼각주에 있는 코스티에르 드 님을 포함하여 다양하고 특색 있는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12개의 크뤼를 가지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이 지역은 대부분 프로방스 지방에 속한다. 그렇지만 와인 생산지역으로 구분할 경우 북쪽 아비뇽과 남쪽 옛 로마제국의 고도 아를을 경계로 동쪽이 프로방스 와인산지, 서쪽이 론 와인산지로 구분된다.

반 고흐의 걸작들이 탄생한 아를
필자는 몇 년 전 서울에서 미식가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유명한 C호텔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외국 손님들과 비즈니스 디너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처음 본 와인을 메인 요리에 호기심으로 주문하였는데, 남부 론의 코스티에르 드 님 지역의 샤토 마스 너프에서 생산한 아르모니오(Armonio) 2005 레드와인이었다. 그르나슈 40%에 전통적인 론 와인에서는 볼 수 없는 품종인 메를로와 카베르네 프랑을 각각 30% 배합한 비등급 와인이었다. 그러나 짙은 자주색에 론의 와인들이 가지고 있는 풍미나 보르도 타입의 무게감을 가지면서도 신선한 산도와 비단결 같은 부드러움을 갖춘 그 와인의 향기를 한동안 잊을 수가 없었다.

샤토 마스 너프의 아침포도원 풍경 , 론강하류삼각주에 위치하고 있어 론지역이지만 론과는 다른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필자는 언젠가 이 와이너리를 방문하고 싶었는데, 소펙사가 인터론을 통해 이곳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와이너리 방문길에 고도 아를과 지중해의 해안도시 생트 마리드라메르를 경유하기로 하고 아비뇽을 출발하였다. 아를은 기원전부터 그리스인들에 의해 세워진 문화적 유산이 풍부한 고도이다. 특히 카이사르(시저)의 내전기에 의하면 그의 정적 폼페이우스의 속주였던 마르세유를 함락시킨 후 로마제국의 남프랑스를 통치하는 거점도시로 발전시켰다. 지금도 구도시 곳곳에 당시에 건설된 원형극장 등 로마의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그러나 역시 아를은 반 고흐를 빼놓을 수 없다. <밤의 카페테라스>, <해바라기>, <황혼의 밀밭>, <옐로하우스> 등 수많은 그의 걸작들이 1888년부터 아를에서 지내는 동안 탄생되었다.

필자는 아를에 머무르며 밤의 카페테라스를 그렸던 ‘카페 라 뉘’를 낮과 밤 두 번에 걸쳐 찾았지만 그의 자유로운 영혼을 표현했던 색깔들은 보이지 않았다. 평화로운 교외 풍경을 묘사했던 <아를의 도개교> 현장을 뒤로 하고 D570번 지방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35㎞ 떨어진 지중해 연안도시 생트 마리드라메르로 향했다. 차창 밖에 펼쳐진 남프랑스의 풍경은 고흐의 얘기처럼 붉은색과 초록색, 푸른색과 오렌지색, 짙은 노란색과 보라색의 아름다운 대조를 이루는 원색적인 자연을 보는 듯했다. 왜 빛의 화가들이 이곳을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필자와 담소하고 있는 샤토 마스 너프의 오너 뤽 보데. 뒤에 그의 포도원이 보인다.

반 고흐의 <해변의 작은 배> 그림으로도 유명한 생트 마리드라메르에 도착, 유명한 성당의 지붕 꼭대기에서 아름다운 지중해를 바라본 후, 해변에서 해산물 요리에 시원한 로제 한 잔으로 잠시 여정의 피로를 풀었다. 생트 마리드라메르를 떠나 론 삼각주를 횡단하여 샤토 마스 너프에 도착하니 저녁 8시가 넘었다. 샤토의 오너인 뤽 보데가 저녁을 대접하기 위해서 기다렸는데 다시 남쪽으로 30분을 달려 유명한 카마르 습지의 중심에 있는 중세 성곽도시 아이구에스 모르테스 성내의 전통식당 라틀리에 드 니콜라스로 안내되었다.

슈퍼 론 와인 탄생 기대되는 특별한 와인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중세의 좁은 석조골목을 따라 식당까지 걷는 동안 필자는 중세로의 완전한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오너 셰프 니콜라스가 직접 서빙하는 스튜디오키친에서 기대했던 와인 아르모니오 2003년과 2005년 빈티지를 시음하였는데, C호텔에서 마셨던 그 향기와 맛이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자정까지 그의 와인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주제로 끝없는 대화를 나누면서 어느덧 친구가 되어 있었다.

중세에 ‘산디아고 순례자’들의 숙소로 사용했던 고색창연한 샤토 마스 너프 와이너리.

이곳 토양은 샤토네프 뒤 파프와 비슷하지만 론강 삼각주로 자갈보다는 모래가 많다. 전형적인 프로방스 지방의 기후로 일조량이 풍부하고 온도가 높지만 늪지대의 호수와 지중해에서 불어온 따뜻한 바람으로 아침 안개와 이슬로 인해 내륙보다 오히려 4~5도 낮다. 이러한 서늘한 기후와 토양은 이곳이 론 지방이지만 메를로나 카베르네 프랑의 재배에 적합하여, 일반적인 론 와인과는 다른 특별한 와인을 탄생시켰다. 이것을 일부 와인 애호가들은 ‘론의 패러독스’라고 부른다. 특히 아르모니오는 뤽 보데와 생테밀리옹의 와인메이커 루이 밋자빌이 협력하여 강건한 론 와인과 섬세한 생테밀리옹 스타일의 특별한 와인을 탄생시켰다. 어쩌면 새로운 슈퍼 론 와인의 탄생일지도 모른다.

샤토 마스 너프에서 시음했던 와인들, 왼쪽에서 두 번째 세 번째가 대표브랜드인 ‘아르모니오’다.

중세에 이탈리아에서 출발한 산티아고 순례자들이 머물렀던 건물인 그의 와이너리 2층 방에서 잠을 청하니 또 다른 감동이 밀려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자욱한 안개가 깔려 있는 포도밭을 둘러본 후 그가 생산한 다양한 종류의 와인 시음을 끝내고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아쉬운 작별을 고하였다. 2014년 4월 필자는 반가운 이메일을 받았다. 그의 와인을 론칭하기 위해 그가 한국에 온 것이다. 이번에는 아르모니오 2009년 빈티지를 시음하면서 우리는 언젠가 또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였다.

<글·사진 송점종 우리자산관리 대표·Wine MBA j-j-s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