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객지원> 자료실
제목
[와인기행]2400년의 문화유산 북부 론 와인 <2014.06.10ㅣ주간경향 1079호>
등록일
2014-06-18 오후 4:07:44
첨부파일
내용
리옹에서 남쪽으로 불과 30km 떨어져 있는 비엔느는 원래 갈리아족의 중심지였으나 BC 47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정복된 이후 로마제국의 전략적 요충지와 와인산지로 발전하였다.

시라를 주품종으로 하는 북부 론 계곡의 와인은 남부 론 와인에 비해 고급와인으로 취급되며 실제로 가격면에서도 차이가 난다. 북부 론 와인은 리옹 남쪽 로마의 고도 비엔느에서 발랑스까지 론강을 따라 주로 서쪽 강변(우안) 기슭에 발달되어 있으며 일조량이 풍부한 대륙성 기후지만 남쪽에 비해 선선하고 온화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남부 론 와인을 대표하는 와인이 샤토뇌프 뒤 파프와 지공다스라면 북부 론은 코트-로티와 에르미타주다. 북부 론은 토양의 특성에 따라 비오니에 품종으로 만든 샤토 그리에와 콩드리유, 섬세한 레드 와인과 루산느와 마르산느 품종으로 개성 있는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생 조세프, 알코올 함량이 높고 강건한 레드 와인을 생산하는 코르나스, 발포성 와인으로 유명한 생페레 등 총 8개의 개성 있는 크뤼를 가지고 있다. 남부 론과 달리 북부 론의 포도품종은 단순하다. 레드는 시라 단일품종(일부 배합을 허용하고 있지만), 화이트 와인은 비오니에와 루산느, 마르산느로 만든다.

코트-로티에서 아침 일찍 포도를 수확하는 모습. 경사가 심해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필자는 북부 론 와인을 대표하는 코트-로티와 에르미타주를 방문하기 위해 지공다스에서 A7번 고속도로를 따라 먼저 발랑스 북부에 있는 에르미타주의 대표적인 와이너리 샤프티에를 찾았다. 시음하기 전에 먼저 포도밭을 방문했는데 대부분의 북부 론 포도밭과는 달리 강 동쪽(좌안) 경사지 정남향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작은 예배당을 배경으로 푸른 론강을 사이에 두고 투롱과 탱레미타주 마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경관이었다.

북부 론의 단순한 포도품종
탱레미타주 마을은 로마시대부터 각광받은 역사적인 와인 산지였다. 토양의 특질은 운모편암, 편마암과 자갈, 모래가 얇게 표토를 형성하고 있는 화강암으로 최고 품질의 시라 생산지다. 시라는 1832년 오스트레일리아에 처음 소개되어 쉬라즈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이 포도품종이 고대 페르시아의 도시 Shiraz(현재도 이란에 있음)에서 왔기 때문이라고 오랫동안 전해져 왔다. 그러나 1998년 UC데이비스의 과학자들이 DNA검사를 통해 시라가 프랑스 남동부 지방의 뒤레자와 몽되즈 블랑쉬라는 두 포도품종의 교배에서 태어났음을 밝혀냈다.

이 기갈 와이너리의 지하저장고에 있는 시음장.

저녁에 호텔에서 추천해준 탱레미타주의 론강가에 위치한 작고 아담한 식당에서 저녁을 하였는데 낮에 시음했던 샤프티에의 톱 브랜드 ‘파비용 에르미타주’ 2001년 빈티지를 주문하였다. 에르미타주 와인의 특징은 코트-로티에 비해 남성적이고 타닌이 강하며 진하다. 붉은 과일, 향신료, 바닐라, 감초향과 스파이시한 풍미는 전형적인 시라의 표준 와인으로 대표된다. 식사가 끝날 때쯤 손님들 중 일부가 필자에게 와인을 권해왔다. 대부분 와인산업 종사자들인데 그들에겐 와인을 즐기고 있는 낯선 동양의 이방인이 아직은 신기한 모양이었다.

다음날 아침 론강을 사이에 두고 자욱한 아침 안개에 뒤덮인 중세의 고도 투롱과 탱레미타주의 몽환적인 풍경을 뒤로 하고 론의 최북단 코트-로티를 방문하기 위해 앙퓌로 향했다. 인터론에서 예약해준 B&B(민박집)에 도착하니 친절한 여주인이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포도밭 한가운데 언덕배기에 위치한 민박집은 야외 수영장까지 갖추고 있었다. 잘 가꾸어진 정원의 의자에 앉아 깊고 푸른 론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치 다른 세상의 별장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여장을 푼 후 필자는 비엔느에 있는 레스토랑 ‘라 피라미드’에서 저녁을 하였다.

에르미타주 샤프티에 포도원에서 수확을 기다리는 최고 품질의 시라포도.

로마 때부터 각광받은 와인산지 마을
비엔느는 리옹에서 남쪽으로 불과 30km 떨어져 있는 고도로 원래 갈리아족의 중심지였으나 BC 47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줄리어스 시저)에 의해 정복된 이후 로마제국의 전략적 요충지와 와인산지로 발전하였다. 로마의 신전과 야외극장 등 지금도 잘 보존된 당시의 유적들이 관광객을 끌고 있다. 특히 20m 높이의 갈로-로만 피라미드(오벨리스크)는 마차경주의 반환점으로 당시 로마제국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바로 이 로마유적에서 이름을 따온 라 피라미드는 한때 미슐랭가이드 별 3개로 라 그랑 퀴진(La Grande Cuisine·프랑스 고전요리)의 대표적인 식당이다. 이 식당을 처음 시작한 페르낭 푸엥은 현재 프랑스의 살아 있는 전설의 요리장인 폴 보큐즈의 스승이기도 하였다. 페르낭 푸엥이 타계한 후 현재는 스타 셰프 패트릭 앙리루가 별 2개로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적 와인명가 ‘이 기갈’
론 계곡에서 수확한 과일, 야채와 디저트, 그리고 100% 프랑스산 식재료로 만든 4종류의 주요리를 주문하였는데, 바삭한 토마토 껍질에 레몬 사프란 소스가 가미된 쇠고기 메인요리에 맞춰 내일 방문할 이 기갈(E. Guigal)의 코트-로티 라 물린 2003년 빈티지를 주문하였다. 수년이 흘렀는데도 보랏빛 루비색에 흰꽃향, 카시스, 블랙라스베리, 토스토, 캐러멜과 제비꽃 향이 어우러진 화려한 질감이 오랫동안 입안에 감돌았다.

도멘 샤프티에의 톱브랜드인 ‘파비용 에르미타주’를 생산하는 포도원 입구.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안개가 자욱한 새벽 포도원에서 힘들게 수작업으로 포도를 수확하는 장면을 보니 와인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D386지방도로를 따라 북론 와인을 대표하는 세계적 와인명가, 앙퓌에 있는 이 기갈 본사에 도착했다. 독일에서 온 와인 수입업자들과 합류하여 방대한 지하 와이너리 시설들을 둘러보았다. 1946년 이 기갈을 설립한 에티엔 기갈이 갈로-로마시대 이전부터 2400년 동안 와인을 생산해온 이 역사적인 포도밭에 둥지를 튼 것은 이 지역의 잠재성을 간파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코트-로티는 이 기갈의 혁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도 에르미타주의 명성에 가려 평범한 시골 와인으로 취급되었을 것이다. 이 기갈은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방법을 탈피, 코트-로티 지역 최고의 크뤼에서 재배된 포도를 엄선하여 자체 생산한 새 오크통에서 3~4년간 숙성시키는 과감성과 더불어 단일 포도원 이름을 명시하여 에르미타주에 비견되는 명품 와인을 탄생시켰다.

기원전부터 2400년을 이어온 이 기갈의 코트-로티 라 물린 포도원의 장관. 경사도가 60%가 넘는다.

현재 마르셀 기갈이 가업을 이어받아 아들 필립 기갈과 함께 비달 플뢰리사, 장 루이 그리파 도멘과 발루이 도멘을 매입하고, 1995년에는 론 강가에 위치한 샤토 앙퓌를 매입하여 세계적인 와인메이커로 성장하였다. 시음을 마친 후 필자는 마을 인근에 이 기갈이 소유하고 있는 유명한 라 물린 포도원을 찾았다. 포도나무가 아니었다면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60도 이상의 척박한 화강암 테라스에 펼쳐진 포도밭은 마치 거대한 로마 야외경기장의 관람석처럼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인간의 자연에 대한 도전의 현장이 아니라 2400년 동안 이어온 위대한 문화유산일지도 모른다.

<글·사진 송점종 우리자산관리 대표·Wine MBA j-j-s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