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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기행]‘테루아의 혼’을 담은 뱅 두 나튀렐 <2014.07.08ㅣ주간경향 1083호>
등록일
2014-07-03 오전 9: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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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석양에 물든 바뉠스의 저녁 지중해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바뉠스는 최고 품질의 천연감미포도주인 뱅 두 나튀렐과 지중해의 해양스포츠 관광지로 유명하다.

중동 석유파동이 있기 전 한때 원유가가 생수가격보다도 낮은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물보다 싼 와인도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있다. 이렇게 싼 와인은 대부분 남프랑스산 와인이다. 지금도 프랑스 시골 슈퍼마켓이나 파리 근교의 대형할인점에서는 2유로 전후의 와인을 발견할 수 있다. 남프랑스는 흔히 프로방스를 포함한 남쪽 지방을 말하지만 와인 생산지역으로는 남론에서부터 스페인 국경 피레네 산맥까지 지중해에 접해 있는 세계에서 제일 넓은 와인산지인 랑그독과 루시옹 지방을 말한다. 이곳 역시 프로방스처럼 고온건조하면서 강수량이 적은 지중해의 기후, 풍부한 일조량과 다양한 토양으로 와인 생산에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최고품질의 천연감미포도주 뱅 두 나튀렐로 유명한 바뉠스 항구의 저녁노을.

5개 와인산지로 구분되는 남프랑스
프랑스 전체 와인의 30% 이상을 생산하고 있는 남프랑스는 대부분 값싼 3등급 와인인 뱅드페이 산지로 프랑스 전체 뱅드페이 생산량의 7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이 지방 와인생산자들은 일찍이 질보다는 양을 추구하여 한때 프랑스 저질 와인생산지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프랑스 정부는 오랜 진통 끝에 2007년 5월에 랑그독과 루시옹 지방을 하나로 묶어 남프랑스와인생산지방(랑그독 AOC)이란 단일 AOC로 통합하였다. 이 방대한 지역에서 엄격한 품질관리제도를 통해 프랑스 와인의 명성에 걸맞은 양질의 와인을 생산토록 독려하기 위해서다.

남프랑스는 현재 동쪽에서부터 가르, 로제르, 에로, 오드, 서쪽 스페인 국경지대인 피레네이조리앙탈까지 5개 산지로 구분되어 있다. 필자는 남프랑스 지방을 효과적으로 방문하기 위해 먼저 마르세유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스페인 국경의 피레네이조리앙탈 지역에 있는 어촌마을 바뉠스의 와인산지를 둘러본 후 내륙지방의 와인산지를 거쳐 다시 마르세유로 돌아오는 일정을 잡았다.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로마의 수도교와 ‘마지막 수업’으로 유명한 알퐁스 도데의 고향 님, 13세기에 설립된 의과대학으로 유명한 와인산업의 중심도시 몽펠리에, 17세기까지 스페인 영토였던 루시옹의 중심도시 페르피냥을 거쳐 스페인 국경 바뉠스까지 가는 동안 차창 밖에 보이는 지중해와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을 보면서 왜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을 찾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피레네 산맥이 지중해와 맞닿아 있는 편암석 테라스 위에 조성되어 있는 포도밭의 장관. 멀리 보이는 항구가 바뉠스다.

석양에 물든 바뉠스의 저녁 지중해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기원전 4세기부터 켈트족과 그리스인들에게 점령당했던 이 조그마한 어촌은 카르타고 제국의 영웅 한니발 장군이 그의 코끼리부대를 이끌고 상륙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 역사적인 곳이다. 중세에는 템플러 기사단에 의해 와인 생산으로 자유와 번영을 누렸으나 12세기부터 스페인의 아라곤제국을 거쳐 다시 프로방스왕국의 영토가 되었다가 1659년에 프랑스에 합병되는 등 알자스지방만큼이나 역사적으로 파란만장한 곳이다. 

오늘날 바뉠스는 최고 품질의 천연감마포도주인 뱅 두 나튀렐(Vins Doux Naturels·VDN)과 지중해의 해양스포츠 관광지로 유명하다. 미슐랭가이드가 추천한 레스토랑이 마침 필자가 묵은 호텔에 있는 엘머스 레스토랑이어서 이곳에서 저녁을 하였다. 유럽여행 시 식당에서 자주 겪는 어려움은 어떻게 제대로 음식을 주문할 것이냐와 음식을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옆 테이블의 도움을 받아 비프스테이크를 주문하였는데, 뜻밖에 나온 요리는 소고기 육회였다. 참기름 대신 올리브기름으로 맛을 낸 육회를 맛보면서 이곳에도 우리나라처럼 육회가 있다는 좋은 경험을 하였지만 다 먹지는 못했다.

바뉠스 아베라우스 와이너리의 포도밭에 있는 교회당, 왼쪽과 교회 뒤에 있는 나무들이 코르크 참나무다.

과일향이 살아 있는 스위트 양조방식
다음날 아침 소펙사의 주선으로 이 지역을 대표하는, 14세기 유명한 아베라우스 수도승에 의해 설립된 아베라우스 와이너리를 방문하였다. 현재 이 와이너리는 이 지역 750여개 포도 재배자와 함께 1150ha에서 바뉠스와 콜리우르 AOC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콜리우르는 레드와 로제와인으로 유명하다. 뱅 두 나튀렐의 제조법은 1298년 몽펠리에 대학의 유명한 의사였던 아르노 드 빌라노바 박사가 뮈타주 법을 발견하면서 개발되었다. 포르투갈의 포트와인과 유사하지만, 뮈타주 법은 발효 중인 포도주에 알코올(5~10%)이나 아황산가스를 첨가하여 발효를 중단시킨다. 즉, 뮈타주 법은 발효가 끝나지 않은 당분을 잔류시켜 높은 알코올 함유량(15~25%)에도 살아 있는 과일향과 복합적인 풍미를 갖게 하는 스위트 와인 양조방식이다.

포도밭 주위엔 코르크 참나무 군락지
시음 전에 먼저 포도밭을 방문했는데 피레네 산맥이 지중해에 맞닿은 해안 절벽, 불모의 편암바위 자갈밭 테라스에서 100년을 살아가고 있는 포도나무들의 모습이 처절하게 느껴졌다. 이곳의 포도품종은 그르나쉬가 대세이지만 이곳 기후와 토양에 적합한 카리냥, 생소, 무르베드르, 시라, 픽풀 등도 재배하고 있다. 포도밭 주위에 프랑스에서는 볼 수 없는 코르크 참나무 군락지가 있는 것을 보니 이곳이 한때 스페인 영토였다는 것이 실감났다. 코르크마개의 원료인 코르크 참나무는 북서아프리카와 스페인, 포르투갈이 원산지이다. 


최고 품질의 바뉠스 뱅 두 나튀렐을 생산하는 아베라우스 와이너리의 본사.

세 번째 코르크가 채취된 흔적이 있는 코르크 참나무.

이 나무의 수령은 150~250년인데, 심은 지 25년째부터 첫 번째 채취가 이루어지고 매 10~12년마다 추가로 채취할 수 있다. 코르크 참나무는 결국 인간에게 12번의 코르크 원료를 선물한 후 생을 마감하는 셈이다. 최근에는 신세계 와인생산국을 중심으로 플라스틱이나 스크루 마개 같은 대체품 사용이 늘어나고 있어 연간 340만톤에 달했던 거래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숙성이 필요없이 바로 마실 수 있는 화이트나 레드와인을 제외하고는 와인애호가들은 여전히 코르크마개를 선호하고 있다. 숨을 쉴 수 있다는 기능뿐만 아니라 오래된 와인의 코르크마개를 조심스럽게 여는 과정도 하나의 문화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필자가 시음했던 바뉠스와 콜리우르 와인들. 왼쪽에서 두 번째가 뱅 두 나튀렐인 바뉠스 그랑 크뤼 조셉나달 1998년산이다.

시음은 중세 템플러기사단 때부터 있었던 별도의 셀러에서 이루어졌는데 VDN뿐만 아니라 일반 와인을 포함하여 총 13종류의 와인을 맛보았다. 이 중 대표 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바뉠스 그랑크뤼 1998년 퀴베 조셉 나달’은 드라이 타입이며 100% 그르나쉬로 만든다. 무려 8년간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후 병입하여 지하셀러에서 다시 병 숙성을 하는데, 연 생산량이 4700병에 불과한 귀한 와인이다. 호박색, 에메랄드그린, 엷은 구릿빛을 띤 호두색에 약간 스파이시한 빵, 밀랍향 다음에 산화된 란치오 아로마를 느낄 수 있었으며, 브랜디 속의 과일향, 견과류와 말린 감초의 풍미가 입안에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숙성시킨 육류뿐만 아니라 염소치즈, 블루치즈에 잘 어울리며 심지어 블랙 초콜릿, 시가와 함께 즐길 수도 있다. 아쉬운 점은 이 와인은 전문와인숍이나 레스토랑에만 독점적으로 공급되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 밖에서는 맛보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문득 안내를 맡았던 마케팅 이사 루피아가 포도원에서 한 이야기가 뱅 두 나튀렐의 향기처럼 오랫동안 필자의 가슴에 남았다. 진정한 이곳 “테루아의 혼”을 보여주기 위해서 포도나무는 편암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글·사진 송점종 우리자산관리 대표·Wine MBA j-j-s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