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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기행]숙성의 예술품 ‘에메 카즈’ <2014.07.22ㅣ주간경향 1085호>
등록일
2014-07-30 오후 3:3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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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루시옹 지방은 아직도 스페인도 프랑스도 아닌 자신들만의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뱅 두 나튀렐(VDN) 와인의 메카 바뉠스에서 북동쪽으로 D114번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지중해를 향해 깎아지른 듯한 경사지에 펼쳐져 있는 척박한 포도밭을 지나 고성과 중세 건물들이 있는 작은 항구마을을 만날 수 있다. 이 항구가 현대 미술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게 한 야수파의 탄생지인 콜리우르다. 이 작은 어촌은 루시옹 지방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름철 관광지 중 하나이며 레드 와인과 로제 와인으로 유명한 ‘콜리우르 AOC’ 와인산지의 중심지다. 필자가 도착한 시간이 마침 늦은 오후였는데 저녁노을에 붉게 물든 지중해와 핑크색을 띤 고색창연한 성채와 건물들이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였다. 이곳에서 야수파가 태동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콜리우르 AOC’ 와인산지인 지중해 연안의 고도 ‘콜리우르’의 환상적인 풍경. 마티스와 드랭에 의해 1905년 야수파가 태동한 곳이다.

야수파가 탄생한 작은 항구 콜리우르
1905년, 색의 마술사 앙리 마티스와 앙드레 드랭이 이 멋진 풍경들을 야성적인 색깔로 표현하면서 야수파가 탄생한다. 야수파는 20세기 초 인상주의에 반하여 눈으로 보는 색채보다는 마음으로 느끼는 색채를 추구하며 밝고 강렬한 원색을 선호한 표현주의의 한 형태였다. 또한 이 컬러풀한 작은 성채마을은 피카소, 뒤피, 샤갈, 마르케, 브라크와 같은 대가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예술적 영감을 얻고 그들의 캔버스에 불후의 명작을 남김으로써 더욱 유명해졌다.

필자는 구시가지에 있는 아발 해변에서 야수파의 길을 따라 걸었다. 갈로-로마시대의 요새 위에 지어진 거대한 마요르카 왕국의 여름별궁이었던 왕성을 지나 해변 끝에 자리 잡은 옛날 등대를 개축하여 만든 아름다운 종탑으로 유명한 여성적인 천사의 교회까지. 산책길 중간에 그들이 그림을 그렸던 위치에 모작과 빈 프레임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마티스의 작품 <열린 창>에서 표현했던 낯익은 풍경들을 프레임을 통해 직접 체험할 수 있어 더욱 감동적이었다. 옛날 포구였던 아몬트의 해안 카페에서 정박해 있는 원색적인 카탈로니아 보트들과 지중해의 석양을 감상하면서 콜리우르의 와인을 즐겼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이곳 특산물인 엔초비를 맛보지 못한 것이 지금도 못내 아쉽다.

콜리우르의 레드 와인은 드라이 타입인데 프랑스보다는 강건한 스페인 와인을 닮았다. 이 와인은 VDN으로 유명한 바뉠스와 스페인 접경지대인 세르브, 그리고 주변 항구인 포트-방드르를 연결하는 지중해 해안가의 계단식 편암으로 이루어진 포도원에서 자란 그르나쉬를 주품종으로 시라와 무르베드르를 배합하여 만든다.

바이오 다이내믹 와인으로 유명한 ‘도멘 카즈’의 셀러도어.

포도알 자체로 발효시키는 양조법
루시옹 지방의 또 다른 대표적인 VDN 산지는 리브잘트이다. 콜리우르에서 북쪽으로 페르피낭을 지나 약 60㎞ 거리에 있는 리브잘트는 특히 알렉산드리아 뮈스카에 뮈스카 블랑을 배합하여 만든 ‘뮈스카 드 리브잘트’로 유명하다. 필자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와인메이커인 도멘 카즈를 방문하였다. 1895년에 설립된 이 가족 중심의 와이너리는 현재 5대째 루시옹 지역에서 가장 질 좋은 VDN과 드라이 타입의 스틸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에서 가장 큰 규모로 220ha의 포도밭에서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으로 포도를 재배하는 와이너리다.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이란 필자가 이미 소개한 바 있지만 유기농법보다 상위개념으로 우주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여 달의 변화주기와 자연에서 채취한 퇴비를 이용하는 자연친화적인 농법이다. 젊은 사장인 리오넬 라베일의 초청으로 와이너리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하였다. 훤칠한 키에 배우처럼 잘생긴 그는 열정적으로 와인과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 그리고 루시옹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레스토랑에서 사용한 식자재도 모두 유기농이라 하였다.

열정적으로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을 설명하고 있는 ‘도멘 카즈’의 사장 ‘리오넬 라베일’.

세계 100대 와인으로 자주 선정
루시옹 지방은 아직도 스페인도 프랑스도 아닌 자신들만의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그것을 증명해 보이듯 그의 셔츠에는 루시옹의 심볼인 빨강과 노란색 스트라이프 무늬가 붙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와인셀러를 둘러본 후 예술적으로 리모델링한 2층 방에서 각각 두 종류의 레드 와인과 스위트 와인을 시음하였다. 최근 중국에 수출하여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에고’ 레드는 드라이 타입의 풀바디로 압축된 과일향과 스파이시하면서도 부드러운 타닌의 복합적인 풍미가 좋았다.

연평균 일조량이 무려 325일에 달하고 석회암 점토의 토양으로 이루어진 이곳 테루아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포도를 압착하여 발효시키는 일반 양조법과 달리 포도알 자체로 발효시키는 독특한 양조법이 강건하면서도 풍부한 과일향을 함께 표현한 개성 있는 와인을 만드는 요체라고 생각되었다. 마지막으로 시음한 VDN인 ‘1978년 빈티지 에메 카즈’는 여러 차례 세계 100대 와인으로 선정된 바 있는 와인으로, 지금도 그 관능적인 풍미를 필자는 잊을 수가 없다. 무려 22년 동안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이 와인의 시음기는 와인제조 과정에서 숙성의 중요성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22년 동안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도멘 카즈’의 대표 와인인 1978년산 ‘에메 카즈’. 세계 100대 와인에 선정된 바 있다.

흔히들 와인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와인의 세계에서는 오래된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포도주의 숙성기간은 포도주의 종류(레드, 화이트, 로제, 스위트 등), 생산지와 테루아, 포도품종, 수확연도인 빈티지, 와인을 구성하고 있는 알코올, 타닌, 산도, 당도에 따라 결정된다. 프랑스 와인의 경우 빈티지나 품질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버건디 레드는 최소 3년에서 20년까지, 보르도 레드는 3년에서 50년까지, 론지방 레드는 1년에서 20년까지 보관이 가능하다.

가장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와인은 스위트 와인으로 보르도의 소테른(샤토 디켐)과 쥐라의 뱅존은 100년까지, 남프랑스의 VDN은 50년까지 보관이 가능하다. 숙성기간이 지난 와인은 오래된 김장김치처럼 산화되거나 색깔과 구조감이 사라진 힘없는 액체로 변하고 만다. 따라서 일반 와인 애호가들은 와인 잡지나 전문가들이 시음을 통해 만들어놓은 빈티지 차트를 참고하여 와인이 최고의 맛에 도달하였을 때 마시는 것이 좋다.

‘도멘 카즈’에서 풍부한 과일향과 강건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알 자체를 발효시키는 양조법을 사용하고 있다.

‘도멘 카즈’에서 포도를 압착하지 않고 알맹이 자체를 발효시키기 위해 고르기 작업을 하고 있다.

숙성하는 동안 레드 와인의 색깔은 보랏빛을 띤 적색에서 벽돌색으로, 화이트는 옅은 녹색에서 황금빛 밀짚색으로, 스위트 와인은 황금색에서 호박색으로 변한다. 초기의 포도품종에서 우러나는 과일 아로마는 차차 바닐라, 마른 가죽, 버섯, 견과류 등의 부케(2차 향)가 복합적으로 형성된다. 햇와인의 거친 타닌, 강한 알코올과 신맛은 벨벳처럼 부드럽고 미묘한 풍미를 뿜어낸다. 필자가 맛보았던 ‘에메 카즈 1978년’은 바로 이런 숙성이란 과정을 통해 탄생시킨 진정한 예술품이었다.

<글·사진 송점종 우리자산관리 대표·Wine MBA j-j-s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