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에서 진정한 옥시탕 문화란 환경과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한 유기농법,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한 양조방식을 통해 미네르부아의 전통을 이어가는 와인을 다음 세대에 넘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남프랑스 와인산업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미디 운하와 유럽 최대의 아름다운 성채마을을 방문하기 위해 필자는 콜리우르에서 피레네 산맥의 북쪽 고원을 관통하는 D118도로를 따라 카르카손으로 향하였다. 카르카손까지는 160㎞의 여정이었는데 다음 일정 때문에 세계 최초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든 리므를 그냥 지나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미디 운하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운하 중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17세기에 건설된 운하다. 시인 폴 발레리의 고향이자 랑그독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지중해의 미항 세트에서 카르카손을 경유하여 툴루즈까지 241㎞에 달하는 운하다. 19세기에는 툴루즈에서 보르도까지 연결하는 193㎞ 길이의 가혼느 운하가 건설되어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장장 434㎞의 역사적인 두 메르 운하가 완성되었다. 이 운하는 카타리파(일종의 기독교 교파)와 옥시탕문화(오크어 혹은 프로방스 방언을 사용한 랑그독의 토착문화)의 본거지인 랑그독 지역의 경제발전과 루이 14세의 왕권 강화를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당시 지중해의 상품은 반드시 스페인의 지브랄타 해협을 통과해야 했는데, 이 운하를 통해 대서양으로 직접 수송이 가능해졌다.
17세기에 건설된 남프랑스 와인의 주요 수송로였던 미디 운하.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이다.
실제로 이 지역에서 생산된 밀, 소금, 옷감과 함께 값싸고 질 좋은 미네르부아 와인 운송에 큰 기여를 하였다. 당시에는 보르도 와인이 먼저 판매되고 부족할 경우에 대체품으로 값싼 남프랑스 와인이 거래되었다. 이러한 전통 때문에 동부 랑그독 와인이 론 스타일인 데 비해 이 지역의 와인은 지금도 보르도 스타일에 가깝다.
와인 운송에 큰 기여를 한 미디 운하
필자가 카르카손에 도착하여 본 미디 운하는 예상보다는 작은 규모였지만 평화롭고 아름다운 전원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운하의 최대 깊이는 2m, 폭은 16~20m에 불과하다. 교통수단이 발달된 오늘날에는 화물수송보다는 관광과 보트운항이 주수입원이라고 한다. 미디 운하의 선착장에서 바라본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는 카르카손 성채는 그 웅장함이 필자를 압도하였다.
대서양과 지중해 사이의 전략적요충지에 있는 카라카손성. 로마의 요새 위에 세워진 이 성은 유럽 최대의 성채도시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카르카손은 오드강을 경계로 좌안은 생 루이 지구, 우안은 중세마을로 나뉘는데, 일반적으로 카르카손 성 하면 중세마을을 말한다. 로마시대의 요새 위에 세워진 카르카손 성은 5세기에 이베리아반도와 남프랑스를 지배한 서고트족에 의해 건설되었고, 대서양과 지중해 사이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특히 13세기 카타리파 신도들을 대량 학살한 비극적인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카타리파는 1209년부터 1229년까지 20년 동안 프랑스 남부에 교세를 확장하고 있었던 기독교 이단 종파였다.
카타리파를 척결하기 위해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알비 십자군을 창설했고, 두 종파 간 전쟁의 결과 이 지역에서 무려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단지 종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죽어갔다. 이 성에서만 하룻밤에 6000명이 넘는 신도들이 화형에 처해졌고, 나머지는 옷이 벗겨진 채 성 밖으로 쫓겨났다. 이 전쟁으로 많은 성곽시설이 파괴되었으나 19세기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사시사철 관광객이 넘쳐흐르며 미디 운하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지정되어 있다. 필자는 52개의 탑과 2중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채에서 그림 같이 펼쳐진 아름다운 밀밭과 포도밭을 보면서 잠시 비극적인 사건을 망각하고 싶었다.
‘샤토 쿠프-로즈’가 있는 오래된 와인마을 골목길 풍경에서 랑그독의 옥시탕문화를 엿볼수 있다.
비극적 역사를 간직한 작은 중세마을
카르카손에서 동쪽으로 옛 로마 원정길인 도미티아 가도를 달리는 베지에 카르카손 고속도로와 D206번 지방도로를 타고 에그-비브마을로 빠져나와 급경사의 좁은 고원도로를 지나면 경이로운 작은 중세마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이 남프랑스에서 가장 강건하고도 전형적인 랑그독 와인인 미네르부아 AOC 생산지의 중심 마을 미네르브다. 낭만적인 와인 생산과는 달리 이곳 역시 비극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마을로 1210년 6월에 십자군의 공격을 받아 7월 22일까지 200명의 경비병이 십자군을 상대로 용감히 싸웠으나 마을 주요 수원인 우물이 파괴되어 항복하였다. 마을 주민 중 끝까지 가톨릭으로 개종을 거부한 카타리파 140명이 화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물론 일화에는 물 길러 다니던 마을 처녀가 십자군과 사랑에 빠져 우물의 비밀을 발설하는 바람에 마을을 쉽게 함락시켰다는 사랑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필자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마을로 연결된 다리를 건너 미슐랭 가이드에 랭크된 레스토랑 샨토방에서 점심을 하였다. 테라스에서 빛나는 태양, 상쾌한 공기, 핑크색을 띤 중세 건물, 그림 같은 포도밭과 올리브밭 풍경을 바라보니 이곳이 파라다이스처럼 느껴졌다.
샤토 쿠프-로즈 와이너리의 오너 칼베즈 여사가 자신의 포도밭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마을은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의 하나로 선정되어 있다. 점심을 마치고 전형적인 미네르부아 와인을 만들고 있다는 샤토 쿠프-로즈를 찾았다. 와이너리에 도착하니 오너인 프랑수아즈 르 칼베즈 여사가 직접 기다리고 있었다. 미네르부아의 와인 역사는 다른 유럽처럼 기원전 1세기 이곳을 정복한 로마군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북쪽 몽타뉴 누아르 산맥 자락 아래 위치한 45ha의 작은 규모의 이 와이너리는 1614년부터 포도를 재배하여 오다가 이 땅을 물려받은 칼베즈 여사에 의해 1987년에 설립됐다.
샤토 쿠프-로즈 와이너리의 포도송이에 있는 메뚜기를 통해 유기농법임을 알 수 있다.
이곳의 전통과 현대적인 양조기술을 접목하여 진정한 옥시탕 문화가 녹아 있는 명품와인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하였다고 한다. 쿠프 로즈라는 명칭은 가족이 소유하고 있던 타일공장에서 사용한 원료로 연한 핑크색을 띤 흙, 쿠프-로즈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포도원은 해발 250~450m의 고도로 온도의 편차가 커 포도를 천천히 익게 하기 때문에 와인에 필수적인 산도와 아로마가 풍부하다. 토양은 단단한 편암-석회암 지반 위에 진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품종은 시라, 그르나슈와 카리냥이다. 필자는 시음이 끝날 때쯤 와인에서 진정한 옥시탕 문화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샤토 쿠프-로즈 와이너리에서 시음한 와인들. 왼쪽에서 두 번째가 대표 와인인 ‘미네르부아 오리엔스 2006’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의 하나
“미네르부아의 테루아에 맞는 품종의 재배, 환경과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한 유기농법,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한 양조방식을 통해 미네르부아의 전통을 이어가는 와인을 다음 세대에 넘기는 것. 그런 의미에서 샤토 쿠프-로즈 와인은 자연과 인간이 오랜 대화를 통해 빚어낸 복합적인 연금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죠.”
비극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요새마을 미네르브 남프랑스 미네르부아 와인 산지의 중심이다.
대표 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미네르부아 오리엔스 2006년’을 포함하여 4종류의 레드 와인을 시음하였는데, 공통적인 특징은 지금까지 필자가 맛보았던 보르도 스타일에 가깝지만 한편으로 확연히 구별되는 맛이었다. 거칠면서도 보다 야성적인 자연의 맛이라고 할까? 그것이 옥시탕 문화의 특징인지는 모르지만 필자에게는 경이로운 미네르브 마을 풍경과 오버랩 되어 지금도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글·사진 송점종 우리자산관리 대표·Wine MBA j-j-song@hanmail.net>